기술 특집
윈드서핑 간략사
윈드서핑(windsurfing)의 가장 이른 구상은 1962년 두 항공학 엔지니어, 짐 드레이크(Jim Drake)와 프레드 페인(Fred Payne)의 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평소 서핑과 스키를 즐겼고, 포토맥강가에 작은 별장을 빌려 지내면서 항공역학과 공기역학 지식을 바탕으로 연으로 움직이는 수상스키(kite-powered water ski)와 연으로 움직이는 서프보드(kite-powered surfboard)를 생각했습니다. 휴가 동안 포토맥강을 달릴 수 있는 장비를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연 제작 기술은 오늘날처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는 구상에 머물렀습니다.
이 두 항공 엔지니어 외에도 1960년대 초반에 윈드서핑 발전의 밑바탕이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12세였던 영국 소년 피터 칠버스(Peter Chilvers)는 가족과 함께 헤일링 아일랜드(Hayling Island)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나무문짝에 막대를 세우고 천을 달아 돛처럼 만든 뒤, 그 위에 올라 강을 건넜습니다. 1965년 무렵 미국 중서부의 뉴먼 다비(Newman Darby)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큰 연을 만들어 그 중심 뼈대를 서프보드 가운데 꽂아 돛대(mast)처럼 사용했습니다. 또한 바람에 맞춰 세일 각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360도 회전하고 휘어지는 유니버설 조인트(universal joint)를 직접 고안해 보드와 돛대를 연결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비는 조작이 어려워 대중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1966년, 짐 드레이크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파티에서 서퍼 호일 슈바이처(Hoyle Schweitzer)에게 예전에 페인과 이야기했던 윈드서핑 개념을 들려주었고, 호일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현지 서프보드 공장에 가서 적당한 보드를 골랐습니다. 드레이크는 유니버설 조인트를 만들고, 1962년의 연 아이디어 대신 피터 칠버스가 떠올렸던 1인용 세일링 개념을 택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공기역학 지식과 세일 제작자 밥 브루사드(Bob Broussard)의 도움을 더해 1967년 5월 역사상 첫 윈드서핑 보드를 만들었습니다.
첫 수상 테스트 때는 물 위에서 세일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할지 몰라, 동행한 밥이 물속에 서서 세일을 들어 보드 위의 짐에게 건네주어야 했습니다. 세일을 세울 때마다 두 사람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두 번째 테스트에서는 업홀 라인(uphaul line, 세일 끌어올리는 줄)을 추가해 혼자서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윈드서핑의 핵심 요소들이 이때 갖춰졌습니다.
드레이크는 윈드서핑의 역학 원리를 과학 보고서로 정리해 1969년 제1회 미국 항공우주 연구센터 세미나에서 발표했습니다. 이후 호일과 그의 아내 다이앤 슈바이처(Diane Schweitzer)의 마케팅으로 윈드서핑은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 있는 새로운 수상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짐을 "윈드서핑의 아버지" 또는 "윈드서핑의 발명가"라고 부를 때마다 그는 자신을 윈드서핑의 "재발명자"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그가 윈드서핑을 만들 당시 앞선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알지는 못했고 그들의 발명이 성공적이었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시기상 그들이 몇 년 앞섰기 때문에 자신은 세 번째 재발명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세일의 기본 구조